백호 문학관
백호 문학관
  • 전주일보
  • 승인 2017.04.1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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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는 고향을 나주(다시면)에 두었다. 조선 최고의 풍류남아, 천재 시인, 명 문장가 등 여러 호칭이 따라 다닌다. 그와 당대를 같이하지 않았지만 기생 황진이(黃眞伊) 또한 풍미하던 시대에 요즘으로 치면 인문학을 공부해 재색이 뛰어난 화류계 최고의 해어화(解語花)였다. 죽은 황진이가 임제의 벼슬길을 막았다. 서도 병마사로 임명돼 부임길에 올랐던 임제가 황진이 무덤가를 지나다 술 한잔을 치고 시조 한 수를 읊은 것이 빌미가 되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홍안(紅顔)은 어디 두고/백골만 묻혔는가/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그를 슬허하노라

 이 일이 알려져 조정의 노여움을 사 파직까지 당했다. 막중한 책무를 띠고 임지로 부임해가던 나라의 관리가 일개 기생의 무덤가에서 실없이 시를 지어 바쳤으니 그럴만도 했겠다. 임제의 실없음을 탓하기 이전에 그의 넘치는 감성탓이었을게다. 아니 동서 양당(兩黨)으로 나뉘어 피 튀기는 붕쟁(朋爭)을 일삼던 정치적 희생양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당파 싸움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비분강개해 벼슬을 내놓고 천하명산을 돌아 다니며 여생을 마쳤다.

그의 고향 나주시가 '백호 문학관'을 재개관 했다고 한다. 2개월여의 리모델링 기간을 거쳤다. 전시실 자체의 소장품과 새로 기증된 유물이 선 보인다. 선생의 생애와 작품을 시기별로 나누고 유물별 설명을 추가해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였다. 선생의 미공개 친필 원본 유물도 특별 전시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젊은 시절 복암사에서 공부했던 석림정사의 현판 친필글씨, 선생의 문집인 겸재(謙齋) 유고 복제본 등이 전시물들이다.

그는 황진이 뿐 아니라 또 다른 기생 한우(寒雨)와도 어울려 지내며 시조(한우가·寒雨歌)를 주고받았다. 빼어난 문장과 감성 넘치는 시들로 당대 명 문장가 반열에 올랐던 그는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호방한 성격으로 인생 후반부를 방랑벽 속에 보냈다. 그 시기에 그는 세상의 온갖 집착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리라. 그가 남긴 유작으로 '수성지(愁城誌)', '화사(花史)',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등 3편의 한문소설과 임백호집, 시조 등이 있다.

틈나면 그의 문학관을 찾아 수백여년전 한 뛰어난 시인, 문장가, 풍류남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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