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병창에 새벽잠이 웃다
가야금 병창에 새벽잠이 웃다
  • 전주일보
  • 승인 2017.03.3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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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현 / 수필가

하루의 일상이 판소리 울림으로 열린다. 나의 눈자위에 진하게 매달린 단잠을 깨우는 아내의 노래가 잠귀를 조금씩 흔든다. 가야금의 가늘고 여린 뚱땅 소리와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새벽잠의 맥을 끊는 하루가 신기하기도 하고 야릇하기도 하다. 노고지리 우짖는 소리 들으며 잠을 깨는 것이나, 가야금 병창에 눈을 뜨는 각성은 상쾌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침 햇살이 가야금 병창의 율동에 흔들리는 거실은 만화방창의 소리 꽃이 피어 늴리리 춤사위가 가득하다.

처음 가야금소리가 들렸던 날을 기억한다. 희붐한 새벽녘, 가늘게 사랑가의 한 대목이 가야금 소리에 맞추어 꿈결인 양 들렸다. 분명 귀청을 울리는 소리는 있는데, 이게 꿈속인지 바깥잠의 여음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늦잠이 버릇되어 잠의 혼몽으로부터 완전한 각성에 쉽게 이르지 못하였다. 아내는 습관적으로 나를 깨우곤 했는데, 그때부터 깨우는 방식이 달라졌다. 가야금 병창의 낮은 가락은 늦잠을 조금씩 간질이다 귀청을 울리는 시냇물처럼 단잠의 새벽을 적셨다. 양양한 새벽의 창이 나의 자명종으로 등장하여 즐거움이 살갑기도 하고 의뭉스럽기도 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늦잠투정이 심했다. 초 중등의 학교시절에 지각없이 지나갔던 통신표의 기록이 없다. 늦잠도 병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생의 훌륭한 덕목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는 서양 격언을 생각하면, 나는 이미 실격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더구나 농촌 삶의 틀 속에 배어있는 새벽의 기상 마당에 치지도외置之度外의 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에 살아남아 밥을 축낼 기회도 없을 뻔했다. 부모님의 이해심 깊은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젊은 시절, 팝송과 흘러간 노래에 도취하여 감상은 물론, 익히고 배워 흥얼거리던 노래 몇 개쯤은 있다. 이제 60대 후반을 넘기고 70대에 이른 지금은 대금산조의 가슴에이는 가락을 좋아하고, 가야금병창의 소리에 귀를 여는 습관이 들게 되었다. 아내의 가야금병창은 살가운 바람처럼 온몸의 청각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다. 가야금소리의 진동이 누워있는 바닥을 흔들고 몽마夢魔를 창밖으로 내쫓아 눈두덩에 매달린 잠이 달아나면, 나는 빙긋이 웃음 띤 채 앉아서 한동안 병창의 흥취에 젖는다. 참 화평하고 느긋하며 인생여정의 꽃가마를 탄 소리꾼의 남편으로 행복한 울림을 즐긴다. 거칠고, 서투르며, 실수투성이이던 아내의 병창이 차츰 다듬어지고, 걸쭉하게 세련미를 더해가면서, 어디선가 드러내놓고 발표하고픈 충동과 자랑하고픈 욕심이 생겼던 시기가 있었다. 가르치는 교수의 격려와 자신감 심어주기에 용기를 얻어 발표회에 나가겠다는 작정을 했다. 힘들게 익히고 외웠던 병창의 흥취와 발성 욕구가 병합하여 청중들 앞에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은근슬쩍 나서보고 싶을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홀로 무대에 나서는 담대함은 없어서인지, 같이 공부하던 동기 예인들과 함께 출연하기로 뜻을 모았다. 함께 모여 연습하고 다듬고, 소리 가락을 맞추는 과정이 되풀이 되었다. 틀리고 어색한 풍경의 결이 곱게 다듬어져 점차 자신감 있는 소리 창으로 바뀌었고, 제법 흥취어린 어깨춤까지 자연스런 모양새로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나의 단잠의 자명종이 된 아련한 뚱땅 소리가 확실히 익숙해질 무렵에, 아내는 더욱 치열한 연습에 돌입하여 발표무대에 섰다. 무대가 돌연 확대되고 청중이 불어나며 편안한 미풍이 아닌 폭풍전야의 긴장이 풍기는 발표장이었다. 아내는 실수와 잘못된 가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만반의 연습을 거듭했다. 그 결과 홀로 출연하는 무대가 아니라 다섯이 출연하게 된 탓인지 모르지만, 한결 안정된 자세로 실수 없이 가야금병창을 끝내게 되어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내는 발표 후에도 가야금 병창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사와 가락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매일 나의 새벽잠은 숙련된 가야금 병창으로 야릇한 웃음을 당기며 깨어남의 현에 오른다.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가야금 병창도 좋아하는 내가 혹시 팔불출의 대열에 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한들 화평천지를 이루는 소리에 나의 장쾌한 하루를 여는 맛이 무슨 부끄러움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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