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레를 아시나요?
수구레를 아시나요?
  • 전주일보
  • 승인 2017.03.23 14:5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여화 / 수필가

분명 고기는 고기인데 기름덩어리 같고 기름덩어린 줄 알고 먹어보면 그건 아니다. 쫄깃하기도 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고 그런대로 씹히는 맛도 있다. 지금은 고기의 맛을 찾아 등심은 구워먹고 차돌박이 살은 국에 넣고 끓이는 등 부위별로 구별해서 쇠고기를 사게 되지만 사실 47년 전 우리가 살던 창신동에서는 부위별 쇠고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그저 수구레는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는 최고의 고기였다.

또 수구레라는 단어를 사전에서는 쇠가죽에서 벗겨낸 질긴 고기를 고아서 굳힌 음식이라고 했는데 고아서 굳히기전의 고기자체를 무조건 우리는 수구레라고 했다. 사실 쇠고기도 가끔은 먹어주어야만 면역력이 생긴다. 는걸 알게 되었지만 예전의 우리는 쇠고기 대신에 고기 비슷한 수구레를 사오면 온가족이 풍성히 먹을 수 있었고 맛도 일품이었다.

69년 수구레 파동이 나고 70년대 서울시에서 낙산과 서대문 쪽에 금화 아파트를 짓고 그때부터 마구 생겨났던 시민 아파트, 몇 년 만에 서울의 달동네는 전부 밀어버리고 거기 4층, 5층까지 올라간 아파트가 지어졌다. 우리도 오빠와 이모 그리고 내가 셋방으로 전전하던 3만 원짜리 전세에서 6만 원짜리 시민아파트 방 한 칸을 얻었다.

이후 그 아파트 전세방은 12만원으로 오르고 그 다음에는 20만원으로 오르면서 대가족이 살던 방한 칸, 다락이 있어서 내방은 다락 차지가 되고 화장실도 아파트 가운데 여러 칸이 있어 줄을 서야 했던 낙산 아파트였다.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된 부모님은 무슨 일이든 찾아다녀야 했을 때이니 이따금 우리들을 위하여 고기를 사러 마장동 까지 걸어서 다녀오시곤 했다. 어머니는 고개가 아프게 장을 보아서 이고 오면 거긴 의례 수구레나, 돼지껍데기, 혹은 닭발이 있었는데 회푸대에 싸서 가지고 온 걸 풀어보면 벌건 피가 그대로 회푸대에 젖어있고. 보자기도 젖어 어머니의 머리가 젖을 정도 이었다.

창신동 동덕여고 입구에는 찹쌀떡 공장이 있었는데 공장이라고 해야 가정집이었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해주고 반품 되어 오는 날자가 지난 찹쌀떡을 얻어다가 프라이팬에 구워서 우리들이 맛나게 먹었던 그 시절. 수구레와 함께 별미인 찹쌀떡은 우리 일곱 남매에게는 그나마 특식이었다고 기억된다.

창신동은 동대문 광장시장이 가까웠다. 휘황찬란했던 광장시장에는 어쩌다 가 보면 부침개를 파는 사람들과 그 옆에 어묵 파는 장수들이 즐비했고 그 옆에 수구레를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로 수구레를 사 먹는 사람들은 지게꾼이나 청소부들 우리처럼 주머니가 비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던 곳이다.

코가 벌겋고 귀가 시리던 그 겨울, 김이 뽀얗게 피어오르던 광장시장 주변의 먹거리 골목, 실컷 길거리에서 사 서 먹어보고 싶었던 수구레와 어묵들 그리고 호떡. 참 그땐 왜 그렇게 맛나 보이던지. 파르르 한번 삶아서 파를 듬뿍 넣고 볶아놓으면 정신없이 달려들어 배가 부를 때 까지 먹어대던 우리 자매들이었는데 해서 우리 자매들은 수구레 하면 옛 시절을 기억해 낸다.

슬픈 추억을 기억으로 수구레가 가끔씩 먹고 싶다던 어머니와 구례 까지 내려가 그 귀하디귀한 수구레국밥을 드시고는 우리 딸 대단 하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그걸 어떻게 찾아냈느냐는 말이다. 몇 시간을 인터넷 검색을 해서 마장동 수구레를 파는 가게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서울로 통화를 했지만 예전에는 많이 팔았는데 요즘은 수구레가 잘 나오지 않는 다는 말에 별수 없이 다음번에도 구례로 내려가기로 마음먹는다.

임실에서도 유명한 국밥집 도봉집이 있다. 하지만 도봉집의 국밥은 돼지 국밥이다. 순대를 만들어 두어 점 넣고 돼지 창자들을 손질하여 삶은 국밥은 어쩌다가 한 번씩 사 먹기는 하지만 선뜻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구레는 근본적으로 소와 돼지의 차이도 있지만 육질이 부드럽다는 것이 맘에 든다. 더불어 옛 추억을 함께 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뜨끈한 수구레 국밥을 떠먹는 수저위에는 어릴 때 먹던 그 맛도 맛이지만 눈에 삼삼하게 떠오르는 동대문 광장시장의 먹자골목의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던 그때가 보이고, 마장동의 질퍽한 길바닥과 가게에 쌓여있던 벌건 고기들이 보인다. 거기 내 모습 열여덟 처녀, 서울생활 5년이 되었어도 촌티를 벗지 못했던 시골 처녀의 꾀죄죄한 모습이 보이고 4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촌티를 벗지 못하는 아낙이 옛 시절 먹던 수구레를 먹고 있다. / 김여화/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봉아 2017-03-24 11:39:15
잘 읽었습니다. 내기억도 비슷한데요. 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