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메리와 박근혜
블러디 메리와 박근혜
  • 전주일보
  • 승인 2017.03.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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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1세(메리 튜더)는 잉글랜드 헨리 8세와 첫번째 왕비 캐서린의 장녀다. 헨리8세와 캐서린 이혼과정에서 가톨릭과 단절하는 극심한 혼란 속에 불안한 처지였다. 캐서린 사망 때는 장례식에도 참석 못하고 공주 지위도 인정받지 못했다. 정통 가톨릭 집안 어머니 영향으로 구교도였던 메리1세는 이복동생 에드워드왕 사후 승계 1순위 였지만 신교도들의 배척으로 밀려났다가 겨우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왕좌에 오른 메리는 아버지 헨리의 신교도 정책을 뒤집으며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벌여 ‘피의 메리(Bloody Mary)’로 불렸다.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딸이다. 캐서린의 시녀출신 앤은 엘리자베스를 낳고 간통혐의로 참수당했다. 엘리자베스는 사생아 취급받았고 메리1세 치하에서는 온갖 박해와 음모에 시달리며 런턴탑에 유폐당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메리 여왕의 뒤를 이었다. 왕권이 위협받는 복잡한 정치체제에서 비혼을 선택하고 빼어난 통치술로 재위기간 동안 잉글랜드를 극빈국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시켰다. 잉글랜드 해군이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를 격파하며 경외의 대상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1세를 롤 모델로 밝혀왔다. 불행을 겪어 봐서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관용으로 국정을 이끌었기 때문이라나.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에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이가 ‘배려’와 ‘관용’을 이야기했다니 역시 상상을 넘어선다. 궁금하다. 엘리자베스의 어떤 점을 닮고자 한 것일까. 엘리자베스는 태생부터 불안한, 궁정의 흑수저에 가까운 자신의 처지를 극복한 인물이다. 유년시절부터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교육을 받고 엄청난 지식욕으로 자신보다 책을 많이 독파한 학자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역사와 철학 등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세상을 익혔다. 아버지와 이복언니 메리를 거치며 잉글랜드를 두 동강 낼 뻔한 신구교간 갈등도 안정화시켰다. 저마다 생각이야 자유지만 박 전대통령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종교적)신념에 매달린 '피의 메리(Bloody Mary)'에 가깝다. 엘리자베스 운운하는 것은 그녀의 영광에 편승하려는 어설픈 정치적 욕망으로 비친다.

임종을 앞둔 엘리자베스가 의회에서 행한 ‘황금 연설’의 한 대목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제발 생각 좀 하라'고 권하는 듯 하다.

“왕관은 남이 쓴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영광스러운 법이며 직접 써보면 그다지 즐겁지 않다. …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양심의 명령이 없었다면 나도 이 왕관을 누구에게든 주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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