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빈자일등(貧者一燈)
촛불, 빈자일등(貧者一燈)
  • 전주일보
  • 승인 2016.12.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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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년 7개월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의혹의 7시간 가운데 겨우 20분이 드러나기까지 그랬다. 그 20분도 앞뒤의 행적을 더 하면 1시간이 조금 넘는다. 나머지 시간은 여전히 음습한 안개에 가려진 채다. 엘레강스한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하는 그 시간, 아이들은 차가운 물속으로 사라져 고통스럽게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이라며 애써 보안막을 펼치고자 하는 영혼없는 이들의 말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 아이들을 포함한 소중한 뭇 생명들이 마지막 숨길을 몰아쉬고 있을 때, 그리고 모두가 구조의 손길 한번 제대로 뻗쳐보지 못한 채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만 보고 있을 때, 대통령은 마치 남의 일인것 처럼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는 것이 그저 아연하고 소름끼칠 뿐이다.

길고도 긴 어둠의 장막, 극히 일부가 강제로 젖혀지긴 했지만 20분이 아니라, 7시간이 아니라, 단 1분 1초라도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 설령 왕조시대의 암군이나 혼군, 용군이라도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베일 속의 어둠을 걷어내고자 5만, 20만, 100만, 190만, 232만 시민이 촛불을 들고 나서야 했다. '바람이 불면 꺼진다'라는 넋나간 소신 발언(?)에도 개의치 않고 오직 진실만을 향해 촛불은 그렇게 켜졌다.

석가모니가 왕의 초청을 받아 왕궁에서 설법을 한 뒤 기원정사로 돌아가는데 수만개의 등불이 길을 밝혔다. 부처를 향한 공양의 등불이었다. 그 가운데 등불 하나가 유난히 빛을 발하며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 가난한 노파가 하루종일 구걸해 저녁무렵 손에 쥔 한푼의 돈으로 기름을 사 밝힌 등불이었다. 비록 가진 것 없었지만 정성을 다해 매단 등불은 다른 어떤 등불보다 힘차게 타 올랐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고사다.

한 방송사 앵커가 브리핑을 통해 거세게 타 오른 촛불의 의미를 강조하며 이 고사를 인용했다. 앵커의 브리핑 도중 '비록 사해의 바닷물을 길어다 붓거나 크나큰 태풍을 몰아온다 하여도 그 불은 끌 수 없다'는 자막도 선보였다.

선과 악, 참과 거짓의 경계를 가를 탄핵의 날이 밝았다. 가부(可否) 세력간 명운을 건 수싸움이 치열하다. 가결 정족수를 놓고 '세월호 7시간'이 향배를 죄우할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해야 한다. 가결이든, 부결이든 정치권의 계산과는 상관없이 촛불은 어둠을 몰아낼 때까지 타 오를거라는 사실을. 빈자의 정성에 진실을 원하는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간절함이 더해진 촛불이요, 등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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