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포스트잇
  • 전주일보
  • 승인 2016.10.23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서나 컴퓨터의 모니터 등 눈에 띄는 장소에 잠시 붙여놓은 조그마한 메모지를 포스트잇(Post-it)이라고 한다. 미국 3M사의 직원이었던 아서 프라이와 스펜서 실버가 1980년대에 이를 상업적 목적으로 출시한 것이 효시다.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은 이렇다. 실버는 1968년 재사용이 가능한 저점도 접착제를 개발했다.

그는 원래 표면에 살짝 달라붙어 있을 정도의 접착력을 가진 접착제를 스프레이나 게시판 표면에 응용하고자 했었다. 회사 내에서 5년여동안 이를 활용할 아이디어에 대한 지지를 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1974년 교회 성가대원이었던 프라이가 예배 시간에 성가대원들이 찬송집 책갈피를 가볍게 붙일 수 있다면 찬송가를 이어부를 때 쉽게 페이지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3M사는 이같은 생활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제품 및 디자인 개발에 투자하기로 하고 필요한 장비를 설치해 만들어냈다. 1980년부터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한 끝에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현재 판매되는 여러 종류의 포스트잇 가운데 노란색 3인치(7.5㎝) 크기의 네모 모양의 오리지널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포스트잇 이른바 '접착식 메모지'가 사람들의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19살 청년이 왜 죽어야 합니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왜! 청춘이 아파야 합니까."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 도어 작업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청년노동자를 추모하는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이 사고 현장에 빼곡히 나 붙었다.

이에 앞서 강남역 20대 여성 피살 사건 현장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포스트잇은 이 사건을 단순한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 혐오' 범죄로 공론화하는 연결점이 되었다. 위안부 소녀상과 세월호 참사 현장 및 유가족들의 농성장 등에도 포스트잇은 어김없이 같이했다.

포스트잇은 나라가, 사회가 그 국민이나 구성원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방치를 넘어 내 팽개치기까지 하는 행태에 항거하는 개개인의 속내를 담아내는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의, 사회의 안전망이 붕괴되고 사후 방안 마저 뚜렷하지 못한 비극적인 현실을 질타하고 답답해하는 심정의 표현인 것이다. 거짓과 꼼수, 책임 회피, 비열한 덮씌우기가 일상화한 시점에 포스트잇을 통한 내적인 심정 표출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몇년전 일부 대학가에 나붙은 70, 80년대 대자보의 축소판이라 할 포스트잇. 이 나라, 이 사회의 안전을 맡고있는 이들의 무능, 무책임, 뻔뻔함을 향한 공개적인 현대판 상소문에 다름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