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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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원
  • 승인 2016.10.1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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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바둑 고수 이세돌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내리 3연패 했다. 이 일은 바둑계는 물론이고 바둑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저 말로만 듣던 인공지능,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한 사실에 경악하는 것이다. 그동안 상상의 세계인 영화 속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된다는 줄거리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영화에서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러다가 우리 인간이 정말 고도의 지능을 가진 컴퓨터에 제어되고 지배당하지 않겠느냐?’ 하는 걱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국에 나선 게임 프로그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둑 프로그램 보다 월등한 스펙을 갖춘 초대형 컴퓨터이다. 보통 우리가 쓰는 탁상용 컴퓨터에는 한 개의 CPU와 GPU가 들어 있다. 그런데 알파고는 1,920개의 고성능 CPU와 280개의 GPU를 연결한 슈퍼컴 급의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구글의 자회사인 영국의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은 엄청난 스펙이 말하듯, 초당 10만 가지의 수를 검토하여 2초 안에 착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이 대결을 위하여 하루 3만 번의 대국을 해왔고, 세계의 거의 모든 기보(棋譜)를 입력해 모든 수를 다 알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3만 번의 대국을 하려면 하루 10판씩 쉬지 않고 둔다 해도 8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어떤 이는 알파고가 1천년 동안 바둑을 두어온 고수라고 할 만큼 많은 훈련을 했다고 말한다. 이런 기계에 인간이 맞선다는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요즘 우리가 흔하게 듣는 빅 데이터(Big Data)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의 일과 행동이 통계와 기록으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자료로 저장되고, 그 자료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통화하고 자료를 검색하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드는 일이 모두 데이터로 기록된다. 뿐만 아니라 택배로 주문한 물건을 언제 받았는지, 누구의 노래를 얼마나 들었는지, TV는 어느 채널을 몇 시간동안 보았는지도 데이터로 기록된다. 추적하려고 한다면 나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소한 기록들이 모여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축적되면 그것을 분석하고 예측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장점도 있는 반면, 개인의 사생활이 완전히 노출되어 보호되지 못하고 있는 위험이 공존하고 있다. 그렇게 모이고 쓰이는 모든 것이 빅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선 새로운 존재다. 이 빅 데이터도 컴퓨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미 우리들은 상당부분 컴퓨터에 의해서 감시받고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아직은 컴퓨터가 최종 명령을 하거나 제어하는 건 아니고 맨 위에서 인간이 조종하고는 있다. 그러나 날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언제까지 인간의 제어를 받고만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컴퓨터의 발전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편리를 제공하면서 다른 한 면에서는 우리의 사생활이 점점 더 많이 노출되는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며칠 전에 사진을 수정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포토샵(Photoshop)의 최신 버전인 ‘포토샵 CC’를 인터넷에서 내려 받아 사용해보았다. 내가 그동안 쓰던 버전도 그렇게 구식은 아니었는데, 새로 설치하고 필요한 교재까지 구입하여 기능을 살펴보니 이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사진 한 장을 제대로 수정하고 처리하려면 적게 걸려도 20분 이상 씨름을 해야 했는데, 이건 단 몇 초 만에 정밀하고 말끔한 작업이 가능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오려내서 색깔을 바꿀 수 있는 기술도 적용되어 있었다. 조금 흔들린 사진도 선명하고 환하게 고칠 수 있고, 얼굴에 핀 검버섯을 없애는 일이나, 넓적한 얼굴을 갸름하게 만드는 일은 오래전부터 가능했다.

 

이러한 발전은 결국, 인간이 하던 일을 컴퓨터가 쉽게 해버림으로써 사람이 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일터에서 인간이 내몰리는 결과로 갈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게 한다. 350만 명의 대졸 젊은이들이 무직자로 방황하는 우리 현실도 사람이 하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하게 되면서 생긴 일일 터이다. 알파고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처럼 컴퓨터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이렇게 발전하다 보면, 어렵고 능력이 필요한 일은 컴퓨터가 모두 하게 되고, 사람들은 몸으로 해야 하는 힘들고 더러운 일만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결국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는 셈이다. 문명이 인간을 편하게 하고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목적에 반해서 거꾸로 인간을 어려움 속에 밀어 넣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이번에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를 이겼다는 말을 듣고, 여기저기서 아줌마들이 “우리 아이를 당장에 그 학교에 전학시켜야겠다. 대체 알파고가 어느 나라에 있는 고등학교냐?”고 물었다는 웃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아줌마들의 엄청난 교육열에 감동해야 하는지, 아니면 허무맹랑한 허영심에 화를 내야할지, 무식한 열정을 그냥 웃어야 할지 난감하다. 어떤 이는 “이번에 알파고가 이기는 걸 보고 바둑 둘 마음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 나라 최고의 고수가 한낱 인공지능에 패하는데, 시시한 아마추어 바둑으로 내로라하던 자신이 창피하다는 의미일 듯하다.

 

5대 0으로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다가 3번을 내리 진 이세돌이 오늘 4번째 대국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세 번을 이겨 승부를 가려버린 알파고 측의 배려(?)인지 이9단의 흔들기가 성공한 것인지 모르지만, 알파고가 여러 번의 의문수를 두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알파고를 너무 몰랐던 점을 인정하면서 어마어마한 컴퓨터에 맞서 한 번이라도 이겨보겠다고 꿋꿋하게 싸워 이긴 이세돌 기사의 용기와 승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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