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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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일보
  • 승인 2016.09.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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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괴기소설이나 호러영화는 한 여름철 사람들을 오싹하게 한다. 영화는 끔찍한 상상력과 함께 시각적 효과를 배가 시켜 더욱 극적이다. 서양에서는 브램 스토커의 1897년 괴기소설 '드라큘라'가 단연 최고다. 죽은 사람이 산자의 피를 빨아 영생한다는 뼈대는 현대판 '뱀파이어'의 원조격이다. 중국에는 강시가 있다. 밤이면 관에서 나와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사람을 괴롭힌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미호가 무더위를 식혀주는 최고의 귀신이다. 여우와 사람의 중간계에 속한다. 구미호는 산 사람의 심장을 노리지만 '환생의 고뇌'때문에 인간답다.

최근에는 좀비(zombie)가 호러영화의 최고 지존으로 등극하고 있다. 좀비는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시체라서 썩어 있기도 한다. 완전히 마술사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에 듣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다. 낮에는 무덤 안에 있다가 일할 때는 밤이 되는데, 암흑 속에서도 보이기 때문에 불빛이 필요 없다. 무거운 죄를 지은 인간이 그 형벌로 좀비가 된다고 전해진다. 사람이 물리면 그 사람도 좀비가 된다. 현대에 와서는 마술사가 아닌 특정 바이러스가 좀비 탄생의 주범이다.

좀비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Day of The Dead)'에서 캐릭터로 정착됐다. 영어에 처음 등장한 건 1838년으로 당시엔 zombi로 표기되었다. 1900년대에 'e'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zombie가 된다. 좀비는 현대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디지털 기기에 푹 빠져 외부 세계와 절연된 사람은 ‘디지털 좀비', 장기 보관을 위해 방사선 처리를 한 식품은 ‘좀비 푸드’라고 부른다. 좀비는 인터넷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로 인기를 누린다. 소위 ‘좌좀’(좌익좀비), ‘우좀’(우익좀비)이라는 조어가 그 예다.

한국판 좀비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이 한여름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고속열차라는 폐쇄 공간에서 인간과 좀비의 대결이 지루하지 않다. 주인공 석우(공유 분)일행이 사투 끝에 간신히 좀비들이 탄 열차 칸을 지나 인간들이 모여 있는 칸에 도달한다. 하지만 용석(김의성 분)일행이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하면서 석우 일행을 배척 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재난 앞에 인간 이기주의의 섬뜩함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조지 로메로 감독은 "현존하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라면서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이라고 했다. 좀비영화 흥행은 디스토피아의 반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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