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
걸레
  • 전주일보
  • 승인 2016.07.0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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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가 바닥에 떨어지면 걸레가 될 수 있지만/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부뚜막에 오를 수 없다// 처음부터 걸레가 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부뚜막에서 떨어지고부터 바닥이 더 지저분하다는 것을/ 행주보다 걸레가 더 흠쳐 낼 것이 많다는 것을/ 마른 걸레든 진 걸레든/ 행주보다 더 깨끗하게 빨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걸레 감으로는 비단보다 무명이 더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 눈에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하고/ 걸레 같은 놈 한 번 돼보지도 못하고// 조각 천 너무 작아서/ 무명 조각도 못 되어서"(김문억 시인의 '걸레에 관한 명상')

걸레는 더러운 곳을 닦거나 훔쳐 내는 데 쓰는 헝겊이다. 집안의 탁자나 장식장, 책상처럼 면적이 좁거나 신장이나 창틀, 응접세트 밑처럼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곳의 먼지를 치우는데 없어서는 안될 살림꾼이다. 걸레는 또 너절하고 허름해 깨끗하지 못한 물건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비슷한 말로 '걸레부정(不淨)'이 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 타고난 근본은 어떻게 해도 쉽게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걸레를 씹어 먹었나'는 속담은 까닭 모를 잔소리가 아주 심함을 핀잔하는 말이며, '걸레 씹는 맛이다'는 맛이나 느낌이 아주 고약하다는 뜻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몹시 불쾌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동문학가 오은영씨는 '참 어려운 일'은 "걸레가 되는 일이다// 너도/ 나도/ 더럽다며/ 멀리해도// 내가 쏟은 김칫국물/ 현수가 쏟은 먹물// 제 몸 던져/ 닦아내는/ 걸레가 되는 일이다// 걸레가 지나간 발자취/ 반짝!/ 빛난다."라고 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반드시 걸레가 필요하다. 누구도 하기 싫은 곳, 누구도 감당하기 싫은 것을 걸레는 언제나 말없이 해내며, 오래 사용해 낡아지면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다. 그렇지만 걸레가 지나간 곳에는 광채가 난다.

우리 인간도 어둡고 찌들고 냄새나는 곳에 빛과 용기, 사랑을 주는 모습이 바로 걸레의 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의 상처를 깨끗이 닦아주고 희망을 주는 걸레가 많아졌으면 한다.

윤종채/무등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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