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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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일보
  • 승인 2016.06.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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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 가문은 집안일에 신경 쓰는 가정적인 남자들로 유명하다. 풍석이 총 113권의 방대한 생활백과서 ‘임원경제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직접 농사지으면서 물고기 잡으며, 술을 빚고 음식 만드는 부엌을 부지런히 드나든 덕분이다. 선비이면서도 그는 이런 집안일로 가족을 건사한 만능 살림꾼이었다.

정조의 신임을 한몸에 받으며 대제학까지 지낸 그의 조부 서명응은 젊은 시절 어머니에게 요리까지 배웠던 원조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다. 풍석의 형 서유본도 능력 있는 아내 빙허각 이씨를 도와 차밭을 경영하고 아내의 저술 활동까지 돕는, 외조 잘하는 남자였다. 그의 부인은 한글로 된 생활백과사전인 ‘규합총서’(5권)를 남겼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집안일은 순전히 여성의 몫이던 조선시대에도 이렇듯 남녀유별을 따지지 않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결혼은 남성이 생계유지를 교환조건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전유하는 노동계약’(델피의 주장)이라고 착각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 7일 발표한 '2015 일·가정양립지표'를 보면 맞벌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14분으로 남성(40분)보다 5배 가까이 길었다.

맞벌이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5년 전보다 3분 늘어나는 데 그쳤다. 남성만 직장 일을 하고 여성은 안하는 비 맞벌이의 경우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6시간 16분, 남성은 47분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여성에게 가사노동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요소가 잔존해 있다는 증거다. 아내의 경제활동은 바라고 있으면서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아내의 고정 역할로 보는 것이다.

또 부인과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혼 남성의 비율은 47.5%에 달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나선 남성은 16.4%에 불과했다. 최근 들어 유독 텔레비전만 켜면 요리하는 남자며, 집안일하는 남자들로 넘쳐난다. 일반 남성들이 그들을 본보기 삼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손쉽게 차려내는 밥상을 보며 반찬 타령만 늘어가니 아내는 속상한다.

가사노동엔 너 나가 따로 없다. 가사는 주부라는 특정인만 하는 일이 아니다. 다 함께 참여해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도와준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가사일은 돕는 게 아니라 나눠하는 것이다.

윤종채/무등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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