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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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일보
  • 승인 2016.05.3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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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주요 산에는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수많은 등산객들로 연일 북적거린다. 이제 등산은 계절이 따로 없이 연중 무휴이다. 등산을 하는데 무슨 조건이 있고 구분이 있겠냐만, 등산하는 사람에게도 급수가 있다고 한다.

먼저 유급자로 8급은 타의산행으로 회사에서 결정된 산행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선다. 7급은 증명입산으로 산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사진 찍으러 간다. 6급은 섭생입산으로 배낭 가득 먹을 거리를 챙겨 오로지 먹으러 산에 간다.

5급은 중도입산으로 산행을 하긴 하되 꼭 중도에서 하산한다. 4급은 화초입산으로 진달래, 철쭉꽃 피는 춘삼월이나, 만산홍엽 불타는 가을이 되면 갑자기 산에 간다. 3급은 음주입산으로 산행을 마치면 꼭 하산주를 마셔야 한다. 2급은 선수입산으로 산을 몇 개 넘었느니, 하루에 이렇게 많이 걸었느니 하는 걸 자랑한다. 1급은 무시입산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계획된 산행은 꼭 한다.

유단자 가운데 초단은 야간입산으로 시간이 없음을 한탄하며 주말은 물론, 퇴근 후 밤에라도 산에 오른다. 2단은 면벽입산으로 바위타기를 즐겨, 틈도 없는 바위에 온몸을 비벼 넣으며, 바위를 안고 온갖 퍼포먼스를 다 한다. 3단은 면빙입산으로 폭포가 얼어붙기를 기다리다가, 결빙소식만 들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빙벽에 몸을 던진다.

4단은 합계입산으로 더 높고 어려운 산은 없나 눈에 불을 켠다. 산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 외국원서를 번역하며 평소 안하던 공부를 하기도 한다. 5단은 설산입산으로 생즉필사, 사즉필생이라는 비장한 출사표를 내고 설산인 히말라야에 도전한다. 6단은 자아입산으로 산심을 깨닫고, 진정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마음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7단은 회귀입산으로 산의 본질적 의미는 자신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8단은 불문입산으로 '산 아래 산 없고 산 위에 산 없다'라는 평등 산사상의 경지에 이른다.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지 말라는 선문답을 하며 유유자적 산을 즐긴다. 9단은 소산입산으로 작은 산도 엄청나게 크고, 높게 보는 겸허한 안목이 생긴다.

산이 우리에게 손짓하는 계절이다. 이번 주말에는 모처럼 산에나 한번 가볼까 싶다.

윤종채/무등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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