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교복
한복 교복
  • 전주일보
  • 승인 2016.05.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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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최초의 신식 학교인 이화학당에서는 1886년의 개교와 더불어 제복을 입히고 있다. 당시 제복을 입히는 것은 지금 교복을 입히는 것과는 취지가 달랐다. 학생수가 겨우 4 명이었고, 그나마도 집이 몹시 가난해 굶기느니 먹여나 달라고 맡긴 소녀나 콜레라를 앓자 죽기도 전에 시구문 밖에 버려 버린 소녀 등 올 데 갈 데 없는 기아나 고아들로 이뤄져 있었다.

이 최초의 교복이 붉은 치마 저고리였으니 별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제 포목에다 붉은 물을 들인 것이다. 굳이 이색적인 제복을 만들어 입힌 데는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여자 교육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인지라 학생 구하기가 어렵기 그지없었고, 또 애써 구해 놓아도 도망치기 일쑤였다. 죄수에게 푸른 옷을 입혀 도망갈 수 없게 하듯이 눈에 띄는 붉은 옷을 입힘으로써 기숙사에서 함부로 외출하지도 못하고 또 도망치지도 못하게 하는 저의가 있었던 것이다.

1907년에 등장한 숙명학교의 제복도 파격적이었다. 지금 간호사들이 입는 옷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영국제 메린스의 자주 빛 원피스에다가 보닛(洋帽子)을 씌웠으니 더러는 제복의 여학생을 보고 도망치기도 하고 더러는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까지 했다 한다. 신시대의 첨단을 간다는 자부심을 길러 주기 위한 제복의 사상이었다.

1910년 등장한 경기고녀의 전신인 한성고녀의 제복은 흰 저고리에 검은 통치마인데 길이가 발목 위로 올라와 한국 여성사상 최초로 발목을 노출시켰다 해서 파격적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제복은 나름대로의 사상을 밑에 깔고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복이 1980년대 중반 군국주의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데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저해하는 몰개성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자율화 됐다. 이후 교복은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져 종전의 획일적이고 딱딱한 모습은 사라지고 다양한 디자인과 밝은 색깔로 바뀌었다.

순천 황전초등학교가 지난 1일 전남도교육청의 창의·인성교육 특색 프로그램인 '우리 멋 이어주기'의 하나로 이 고장 출신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씨가 재능기부해 25명 전교생이 한복을 교복으로 입었다. 학생들이 우리 옷 교복 입기를 통해 여유와 전통의 참맛을 알고, 바른 예절 생활로 올바른 인성함양에 도움이 됐으면 싶다.

윤종채 /무등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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