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영재교육
미술과 영재교육
  • 승인 2008.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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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어렸을 적 설레임과 기대 같은 것이 많이 무디어지고 시들어 버렸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미술 그 자체가 생생한 기쁨으로 다가오던 그 옛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의 느낌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많이 희미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술이 싫어졌다. 아니 어려워져서 관심이 멀어졌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림 자체는 참 좋은데 어쩐지 친하기 어렵고 또 현대미술이라는 것에 와서는 더럭 겁이 날만큼 난해하여 왕년에 그림을 좋아했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미술? 이크! 도망가자’라는 식이 되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혹시 미술이 너무 미술전공자들만의 전유물처럼 되어 독점화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이것을 우리나라 학교 교육과의 연계선상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미술은 앎과 느낌의 두 수레바퀴로 굴러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술이라는 수레는 인식과 이성(앎, 사고-왼쪽 뇌)과 감성(느낌-오른쪽 뇌)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느낌’으로 알고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던 내 기억이 차츰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미술을 ‘사고하는 쪽’, ‘아는 쪽’으로 진행시켜나갔기 때문에 느낌의 감동은 줄고 그 대신 앎을 향한 탐구욕만이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한쪽 바퀴가 다른 바퀴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져버렸다는 그 수레가 올바르게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사람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교육 대신 앎을 향한 탐구욕만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영재교육을 위해서는 IQ와 EQ로 대변될 수 있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한 두뇌 개발이 함께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영재교육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올바른 인성교육, 인간교육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교육환경을 감안할 때,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 분야는 어렸을 때부터의 집중적인 체험과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유년시절의 예술적인 체험과 교육이 창조력과 독창성을 개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미술이란 원래 보는 것을 전제로 한 표상의 예술로서 표상(表象)이란 말은 ‘형상’과 ‘상징’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象)이란 말은 문자적 언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즉 형상을 지칭한다. 또 이 형상이란 말은 어떤 한 형상이 내포한 의미나 이미지, 뜻, 이런 정신적인 내용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범위의 말이다. 따라서 ‘표상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까지도, 상상이나 환상에서 본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미술은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두 바퀴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봄으로써 표상한다는 것’은 직접적 감각에 의하여 지각한다는 것과 오성(五性)의 전체적 연계성 속에서 비로소 보는 것이 통합되는 시지각(視知覺)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남종의 문인화가, 이른바 사대부 양반들이 화원 화가들을 무시했던 이유는 그들이 손의 재주는 있으나, 사물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생각’의 재주, 즉 창조적인 두뇌는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무시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은 1980년대 말부터 국내 미술계의 개방 물결이 본격적인 궤도를 진입한 이후 1990년대 초부터 해외 미술의 활발한?유입과 국내 작가들 역시 세계무대로의 도약을 위해 해외전과 국제전에 참여함으로써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서양인들이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독창성의 결여'이다. 우리의 현대 미술이 근대 서양미술의 수용에 따른 모방과 재창조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을 볼 때, 무언가 이국적이고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서양인들의 눈에 '서구화'라는 인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지적하고 있는 '독창성의 결여, 독창성의 부재'는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최대 과제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고 있는 ‘독창성의 결여’는 무엇 때문이고 또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입시 위주의 미술교육 시스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보여주는 너무 잘 그려진 그림 혹은 너무 잘 끝내려고 하는 특성은 바로 입시미술교육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로 인해 ‘깊이 있는 표현력의 결여’와 ‘충동적인 면의 결여’라는 단점이 도출된다. 이것은 많은 작가들이 하나의 틀 속에 갇혀 작업하는 데서 오는 빗나간 자기 완성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이런 작업은 반문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급진적인 작품을 낳을 수 없게 되고 창작의 자율권마저 스스로 저버리는 답보적인 상태로 머물고 만다. 우리나라의 입시미술교육, 심지어 예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암기식 교육의 문제점은 대학에서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성교육, 인간교육이 기본이 되는 영재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미술교육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고 이것은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만이 가능하다./ 이태호 전주문화재단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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