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첫눈
  • 전주일보
  • 승인 2015.11.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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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한두 가지 있게 마련이다. 또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보는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름이 없다. 오래전 잊혀졌던 사람이 떠오르고 외로운 사람은 무작정 길을 나서기도 한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풋풋한 연인들에게는 그들의 만남을 축하해주는 하늘의 하얀 선물일 것이다. 또 눈 쌓인 스키장이나 온기가 묻어나는 난롯가에서 달콤한 만남을 생각하기도 한다. 군밤장수의 모닥불이 정겹게 느껴지고, 도심의 한밤에 차갑게 들려오는 찹쌀떡 장수의 외침이 시작되는 것도 이때쯤이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인적 드문 고립의 시작이고, 하루 종일 길을 가야하는 운전기사나 눈을 치워야 하는 미화요원들의 긴장이 시작되는 것도 첫눈을 마주하면서부터다.

노인들은 차가운 한기를 시린 무릎으로 느끼며 세월의 무상함에 숙연해지고, 가난을 두 어깨에 짊어진 서민들에게 눈은 추위와 배고픔을 상징하는 엄동설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을 것이며, 군에 갓 입대한 이등병들에게 눈은 드넓은 연병장에 쓸어도 쓸어도 또 다시 쌓이는 하얀 쓰레기와 같은 느낌일 것이다.

눈은 산짐승들이게도 위협의 대상이며,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는 길고 지루한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처럼 첫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양하게 흔들어 놓는다.

예전에는 매서운 추위가 오면 땔감이 변변치 않던 백성은 견디기 참 어려웠다. 그래서 동사(凍死) 곧 얼어 죽는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옛사람들은 눈과 풍년과의 상관관계를 믿었다. 그뿐만 아니라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라며 눈을 좋은 조짐으로 보았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이 왔다.

겨울의 한기는 사람들의 옷깃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한다. 사랑과 나눔으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따뜻한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

윤종채/ 무등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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