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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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일보
  • 승인 2015.11.2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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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양식 테이블 세팅이 일반화된 것은 기록에 의하면 1700년경 이후의 일이란다. 그 전에는 유럽의 신사숙녀들이 자신이 쓸 수저를 지니고 외출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자동차 열쇠와 지갑을 가지고 다니듯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수저가 소지자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의미가 됐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농장주들도 들일을 하게 마련이었고, 손톱에 흙 등이 끼곤 했지만, 식사 때 품에서 반짝이는 은수저를 꺼내어 보이면 적어도 농노 계급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했다는 거다.

이 때문에 절도대상 1호 품목이 은수저였는데 미국이 이민의 신천지로 떠올랐을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서도 셰넌(니콜 키드만분)이 아일랜드 귀족인 부모의 은수저를 훔쳐 달아나는 장면이 나온다.

기능적으로 은수저는 미학적인 가치 이상의 유용성이 있는데 이는 은이 올리고다이나믹 효과라는 항균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왕실에서는 음식에 독이 있는지 알아 보는데 요긴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요즈음 인터넷에는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화제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서 다이아몬드수저로 발전 중이다. 이는 단순한 숟가락 이야기가 아니다. 양극화 사회에 대한 자조적 메시지이자 벌어져만 가는 사회 계층간 간극을 아프게 풍자하고 있다.

금수저나 흙수저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라는 관용구의 파생어로 보인다. 원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건 부유한 혹은 행운의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은 은수저를 금수저로 발전시키고 흙수저라는 신상품을 만들어낸 거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는 것을 가리켜 ‘나무 숟가락을 물고 태어났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그래서인지 ‘wooden spoon(나무수저)’은 꼴찌상이라는 뜻도 있다.

숟가락은 계속 진화한다. 은수저가 이제는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바뀌기도 한다. ‘The Who’의 곡 ‘Substitute’에서는 ‘나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물고 태어났다’고 노래한다.

이 모든 유행어가 결국은 사람 팔자가 태어날 때 정해진다는 함의를 담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 흙수저 자식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걱정이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윤종채/무등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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