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본 지역 살리기의 길
군산에서 본 지역 살리기의 길
  • 전주일보
  • 승인 2015.08.23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섭 금강방송 보도제작국장

군산은 도내에서 가장 큰 제조업 도시다. 산업단지의 공장 규모와 굴뚝, 항구의 크레인 등은 도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다. GM 대우 자동차, 현대 중공업, 두산 인프라 코어, OCI 등 대기업 공장과 수많은 협력 업체들이 늘어섰다.

산업단지 도로는 수십 톤 짜리 대형 트럭이 줄지어 오간다. 트럭들은 철판 등 원자재를 싣고 굉음을 낸다. 운행 차량의 엄청난 무게 때문인지 도로는 파이고 구멍나는 등 거칠기 짝이 없다. 공장은 철을 굽고 펴고 붙이는 불꽃이 일고 화학약품에 따른 공해가 없을 수 없다.

이러다 보니 군산의 도시 이미지는 삭막한 산업도시. 거기다 군산항은 퇴적물과 어려운 부두 경영 등으로 퇴영적인 이미지마저 가지고 있다. 도내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조용하고 아담한 정취어린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군산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특히 역사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지역보다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인 일제 강점기의 유물이 집단화 돼 있다. 당시 일본 사람이 살던 히로쓰 가옥 등 일본식 주택, 은행, 세관, 부두 등 일제 착취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 군산 못지않게 일본인들이 살았고 번화했던 인천, 목포, 부산 등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또 1900년대 이후부터 형성돼온 독특한 먹거리가 있다. 빵이 구워질 시간이면 줄을 서야 하는 빵집, 앙금이 풍부하고 피가 얇고 기름 없이 굽는 호떡집, 짬뽕으로 유명한 중국집, 어려운 시절에 생일날이나 먹었던 쇠고기 무국집···. 쌀의 일본 반출지로서 북적거렸던 항구도시와 6.25 전쟁 등을 겪으면서 형성됐던 음식문화가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

군산은 이런 근대 역사의 흔적과 먹거리 문화를 묘하게 엮어냈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되새기는 근대 역사 문화 박물관을 만들고, 일제 강점기 시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도록 당시 건물들을 잇달아 둘러보는 코스를 개발했다.

여기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는 일이다. 이 거리를 둘러보는 과정에 출출한 배를 달랠 수 있는 특화된 먹거리 집들을 들를 수 있다. 쉽게 찾을 수 있고 간단히 먹을 수 있어 좋다. 거기에 사람들까지 많으니 적당히 사람 구경도 할 수 있다.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현대화 이전에 우리 선조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면서 역사의 의미도 생각하고 색다른 먹거리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군산의 특색이 SNS와 매스 미디어를 통해 알려져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급증했다. 지난해 50만여명이던 관광객이 올해는 100만명으로 늘어날 기세다. 주말과 휴일이면 관광객들로 넘쳐날 지경이다. 이제는 주차장과 휴식처 등 편의시설을 확충해야 하는 과제를 안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군산의 이 같은 의미 있는 성과는 지역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의 길을 보여 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이 남겨놓은 것들로 치욕과 무시의 대상이었던 흔적들을 오히려 반면교사로 보는 생각의 대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랑할 역사든 오욕의 역사든 역사를 그대로 보고 되새기면서 추억하는 것도 대중의 관심을 자극했한 것이다. 여기에 소소하고 독특한 먹거리가 덧붙여진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군산의 역사문화가 지역의 고귀한 자원이 된 것이다. 이런 자원들이 몰려 있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던 원도심이 이제는 군산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삭막하고 멋없는 산업도시, 군산이 근대역사를 현대인에게 고귀한 문화로 승화하는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러면서 원도심도 살리고 원주민에게도 경제적 도움이 되고 있다.

결국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소중한 자원이다. 지역 문화를 무시하고 제조업이나 대규모 기업 유치만이 살 길이라고 보는 태도는 오히려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되고 있다. 지역 여건에 따라 기업도 유치해야 하겠지만 지역 문화를 되돌아보고 천착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마을의 역사 문화 자원을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이것이 지역을 살리고 주민을 살리는 일 아니겠는가?

김경섭/금강방송 보도제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