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검은색
  • 전주일보
  • 승인 2015.05.0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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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의 갱 영화를 ‘필름 누아르’라고 하는데 ‘누아르’는 ‘검다’는 프랑스어다. 진한 검정을 ‘칠흑같다’고 한다. 칠(漆)이 아주 검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다. 칠흑을 영어에서는 램프의 검정으로 만들었다 해서 ‘램프 블랙’, ‘오니키스 블랙’이라 한다. 전에는 검은 소를 청우(靑牛), 말의 검은 털도 ‘청모(靑毛)’라고 했다. 이 ‘청(靑)’은 진한 감청색. 옛날에는 검은색으로 통했다. 자동차의 사고율은 청색 차가 가장 높다고 한다. 청색은 실제 거리보다 더 멀리 보이기 때문.

검은색이 없을 때 물감으로 검은색을 만들려면 3원색의 3색을 섞으면 된다. 전에는 검은색을 내려면 주로 유지류를 태워서 생기는 검정이나 흑연을 썼다. 그러나 요즘에는 공장에서 카본 블랙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다.

검은색은 어둠을 연상시킨다. 검은색에 악의 이미지가 있는 것은 그래서인데 범죄자나 유죄를 나타내는 이미지도 함께 있다. 빛이 없기 때문에 무(無), 또는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포용의 이미지도 갖는다. 검은색은 상복으로 쓰는 곳이 많은데, 좀 유별났던 것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다. 영국 여성들은 복상기간(服喪期間)이 길어 몇년씩 검은 옷만 입었다. 죽은 사람이 남편일 경우는 2년이나 2년 반, 부모나 자식일 때는 1년, 형제자매는 반년, 백부와 백모는 3개월, 조카는 6주로 돼 있었다. 남성은 상장만 달면 되는데 여성은 온몸을 검정으로만 둘러야 되니 상이 겹치면 그야말로 연년세세 상복 차림이다. 심지어 복상 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웨딩드레스까지 검은색이나 회색이라야 했다.

반면 국민의 약 90%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는 올해 5월부터 여성들은 검은색 옷을 사입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타지키스탄 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 방지를 위해 검은 옷 판매를 금지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인데 타지키스탄 정부는 히잡 착용과 수염 기르는 일, 이슬람식 이름 사용도 금지하는 것을 검토 중. 그렇지만 검은색에는 격식이나 고급의 이미지도 있어 ‘검은 세단’ 하면 고급차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화가 중에 검은색을 많이 쓴 사람은 스페인의 고야. 만년에 자기집 방벽에 그린 14점의 벽화들은 모두 검은색을 모티브로 해 그린 ‘검은 그림’들이었다. 무술에서 유단자가 검은 띠를 하는 것은 수련 중 띠를 빨지 않아 검게 때가 끼기 때문에 긴 수련 기간을 상징하는 것. 그러나 바둑에선 흑이 선이고 체스에선 흑이 후수이므로 선후는 동서가 다른 것 같다.

김갑제/무등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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